오늘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대해 남겨보려한다.
1. 파리 골목에서 만난 할아버지, 낯선 도시의 안부를 묻다
내가 파리를 여행했을 때, 도시의 낭만보다 먼저 만난 건 낯선 거리의 두려움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붐비지 않던 어느 평일 오후, 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지하철을 내려 낯선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낮고 거친 말투, 얼핏 들리는 클락션 소리들이 괜히 겁을 줬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길을 잃은 것 같군요?”
은은한 불어 억양이 섞인 영어였다. 뒤돌아보니, 수염이 희끗한 중절모의 할아버지가 미소 짓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 나도 자주 헷갈리는 길이에요.”
그는 내게 구글맵보다 더 정확한 설명으로 목적지를 알려주었고, 심지어 그 방향으로 몇 블럭을 함께 걸어주었다. 가는 길 내내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신도 젊었을 땐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언젠가 한국의 지하철 안에서 도움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요. 돌아서서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고요.”
그 짧은 10분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낯선 곳에서의 불안은, 그렇게 사람의 말 한마디로 녹아들었다. 그는 내게 파리의 첫인상을 바꿔준 사람이고, 여행이 단지 ‘장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첫 번째 인연이었다.
2. 체코 호스텔의 룸메이트, 잊지 못할 밤의 대화
프라하의 어느 호스텔에서, 나는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자 줄리아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
처음엔 그저 간단한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였다. 각자의 일정에 바빴고, 침대 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조용히 휴대폰을 보며 하루를 정리하던 우리는, 어느 날 저녁 우연히 동시에 방에 들어오며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그날은 유독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던 날이었다. 도시의 화려한 조명과는 달리, 마음속은 조용했다. 그 감정을 그녀도 느꼈던 걸까.
“혼자 여행하면 가끔 너무 조용해서, 내 속 생각 소리만 들려.” 줄리아가 말했다.
그 말 한마디로 대화는 시작되었고, 그날 밤 우리는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침대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가 여행을 떠난 이유,
사랑에 대한 고민, 부모님에 대한 감정,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들까지.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삶도 전혀 달랐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잘 통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사람과의 연결은 언어나 문화보다, 타이밍과 진심이 중요한 것 같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지라도, 때때로 가장 솔직한 감정을 나누게 되는 존재들이다.
줄리아와의 대화는 내 여행에 감정의 색을 입혀준, 따뜻한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3. 오키나와의 할머니, 별것 아니지만 가장 깊었던 인사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여행 마지막 날, 나는 동네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현지 어르신들만 식사하던 오래된 식당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키가 작고 등을 조금 구부린 모습이었는데, 날 보자 손님이 반가운 듯 큰소리로 인사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메뉴판엔 그림도, 영어도 없었고, 나는 그저 무작정 손가락으로 아무거나 가리켰다. 그렇게 나온 음식은 소키소바.
살짝 짭조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의외로 입맛에 딱 맞았다.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었고,
내가 “오이시이!(맛있어요)”라고 말하자 아주 환하게 웃으셨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할머니는 “조금 기다려요~” 하시며 어디론가 가더니, 조그만 포장용 떡 하나를 건넸다.
“기념이에요. 오키나와 기억해줘요.”
말 한마디가 따뜻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 마음은 그 어떤 고급 기념품보다 깊게 남았다.
그날 나는 그 떡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먹었다. 그리고 눈물이 조금 고였다.
누군가의 작고 진심 어린 친절이,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여행은 장소가 아닌,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
우리는 여행을 ‘어디를 갔는가’로 기억하지만, 실은 ‘누구를 만났는가’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지나치는 인연처럼 보였던 사람들의 말 한마디, 눈빛, 손짓 하나가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때로는 그 여행 전체의 감정을 결정짓는다.
길을 알려준 노신사, 방을 함께 썼던 여행자, 소박한 한 끼를 내어준 현지인.
그들은 내 여행의 지도이자 등불이었고, 앞으로도 내가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마주할 때
조금 더 따뜻하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만들 것이다.
여행 중의 만남은 우연 같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은, 또 어떤 여행이 되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