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여행지에서 먹은 잊지 못할 음식과 식당을 소개해 보려 한다.
여행에서의 기억은 종종 '맛'으로 더 오래 남는다. 풍경, 사람, 날씨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 나라의 식탁에서 처음 만난 낯선 맛과 향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음식 한 입에는 그때의 분위기, 대화, 감정까지 담겨 있어서 단순한 맛 이상의 기억으로 남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잊지 못할 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1. 이탈리아 로마, 골목에서 만난 최고의 파스타
이탈리아 여행의 첫 도시는 로마였다. 사실 로마에 도착하기 전부터 파스타와 피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여행책자나 블로그에서 보던 유명 맛집을 메모해 두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은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로마의 스페인 계단 근처, 한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골목의 식당. 외관은 특별하지 않았고, 딱히 관광객을 위한 가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배도 고프고 잠시 쉬고 싶어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인생 파스타를 만나게 됐다.
크림 없이 간단한 토마토 소스와 신선한 바질, 올리브 오일이 어우러진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였다.
한 입 먹는 순간, 토마토의 진한 풍미와 치즈의 짭짤한 맛, 그리고 알 덴테로 삶아진 면의 식감이 완벽하게 어울려 놀랐다.
평소 파스타를 즐겨 먹지만, 왜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다르다'고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음식을 먹는 동안 옆 테이블의 현지인들은 와인 한 잔과 함께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골목의 풍경, 레스토랑에 울려 퍼지는 조용한 음악, 따뜻한 저녁 햇살까지.
그 모든 것이 그날의 파스타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종종 그 파스타의 맛이 그리워질 때면, 집에서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보곤 한다.
물론 그 맛이 완벽히 재현되진 않지만, 그때의 로마 골목과 식당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즐기는 그 순간도 충분히 행복하다.
2. 교토의 조용한 골목에서 마신 말차와 단팥의 조화
일본 여행 중 교토를 찾았을 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전통 찻집에서의 말차 체험이었다.
교토의 전통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시는 말차는 어떤 맛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아라시야마를 둘러본 후, 근처의 작은 골목 안에 있는 오래된 찻집에 들어갔다.
나무로 된 미닫이문, 다다미 방, 그리고 정원 너머로 보이는 작은 연못까지 모든 것이 고즈넉했다.
주문한 것은 진한 말차 한 잔과 함께 나온 단팥이 든 화과자. 처음 맛본 말차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차와는 전혀 달랐다.
진하고 쌉싸름한 맛, 그리고 뒤따라오는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와 함께 곁들여 먹는 달콤한 단팥의 조화는 절묘했다.
그 순간, '맛'이라는 것이 단순히 혀로 느끼는 감각을 넘어 공간과 시간, 분위기와 함께 기억되는 것임을 실감했다.
창밖의 정원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가끔씩 불어오는 산들바람, 그리고 고요한 공간이 말차의 쌉싸름함을 더 깊게 느끼게 했다.
교토의 찻집에서 마신 말차와 화과자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그 자체로 여행의 한 장면이 되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교토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쌉싸름한 맛과 함께 그때의 정원이 떠오르곤 한다.
3.파리에서의 크루아상, 아침의 행복
파리는 음식의 도시다. 미슐랭 레스토랑부터 다양한 길거리 음식까지 맛볼 것이 많지만, 나에게 파리의 맛을 가장 잘 기억하게 해준 것은 크루아상이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에펠탑 근처의 작은 동네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사서 호텔로 돌아오던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따뜻한 크루아상을 종이봉투째 들고 걸으며 한 입 베어물었을 때의 그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버터 향은 정말 놀라웠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층층의 식감,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버터의 풍미. 사실 한국에서도 크루아상은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그날 아침 파리의 공기와 함께 먹었던 크루아상은 전혀 다른 맛이었다.
파란 하늘, 에펠탑의 실루엣, 아침의 선선한 공기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더 특별했다.
그 이후로도 파리의 여러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먹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첫날의 크루아상이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건 맛 자체보다 그때의 기분과 설렘이 더해져서일 것이다.
파리의 아침을 걷던 그 순간, '이게 진짜 여행의 맛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과 분위기, 그리고 내 감정이 더해져야 비로소 그 맛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무리하며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새로운 풍경과 문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이 그곳의 음식을 통해 그 도시를 느끼는 것이다.
내가 만난 로마의 파스타, 교토의 말차, 파리의 크루아상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 도시를 대표하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래서 다음 여행에서도 또 새로운 맛을 찾아갈 것이다. 낯선 골목, 작은 찻집, 소박한 빵집이더라도 그 안에 숨어 있는 여행의 진짜 맛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맛이 떠오를 때, 나는 또 한 번 그 도시를 마음속에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될 것이다.